패자를 삼키는 법: 중공 정책 승계의 부조리
중공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것은 사상 대결이 아니라 인물을 겨냥한 숙청이다. 사람은 규정되고 버려지지만, 그들이 만들었던 정책은 종종 다른 얼굴을 쓰고 살아남는다.
덩샤오핑은 한때 마오쩌둥에게 “자본주의 길을 걷는 자”로 낙인찍혀 전국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마오가 죽고 나니 바로 그 덩의 작은 개혁 조치들이 정권을 살렸다. “자본주의 노선”이라며 욕하던 내용이 결국 체제를 연명하게 한 처방이 된 셈이다.
대미 전환의 구상은 마오 말년에 처음 싹텄다. 그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먼저 미국과의 관계를 열었다. 화궈펑은 이 노선을 이어갔지만 곧 권력 다툼에서 덩에게 밀려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화가 밀려난 뒤, 덩이 “미국을 들여오고 서방에 의존하자”는 정책을 더욱 철저하게 추진했다. 사람은 부정되지만 방향은 이어졌다.
보시라이가 실각한 뒤 그는 거의 반면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정치 기법은 사라지지 않았다. 몇 년 후 시진핑은 “홍가를 부르고 흑을 때린다”는 레퍼토리를 도구 상자에 넣어두고 포장만 바꿔 활용했다. 겉으론 보시라이가 진 듯해도 사실은 배우만 바뀐 같은 극이다.
더 큰 부조리는 중공의 투쟁이 “노선의 옳고 그름”을 다투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호, 비판, 고발은 모두 권력 싸움을 위한 소품에 불과하다. 누가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가 상대를 제거하고 권력을 붙잡느냐가 전부다. 따라서 정책은 “독약”이라며 몰아붙이다가도 다음 임자의 입에서는 “영약”으로 둔갑한다. 논리는 필요에 따라 구부러지고, 설명은 거짓말로 채워진다.
이런 체제에서는 패자가 결코 완전히 패배하지 않는다. 이름과 육신은 삼켜지지만, 그들이 설계한 정책은 대신 살아남는다. 정권의 승리가 종종 패자의 유산 위에 세워지는 것, 그 자체가 이 체제의 기괴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