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아시아주의의 유령―중국은 왜 황인 해방운동에서의 배신을 직시하지 못하는가
1. 어제의 유령들―동남아·동북아의 기억
동남아에서는 일본의 등장으로 유럽 식민지의 무적 신화가 깨졌다는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버마, 베트남… 백인 정권이 수세기 동안 굳건히 지배하던 곳에서 일본의 공격은 처음으로 이렇게 증명했다. “백인은 이길 수 있고, 황인은 결코 열등하지 않다.”
동북아에서도 조선반도와 만주는 비슷한 기억을 간직한다. 일본 통치가 때로 잔혹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서구 식민 세력을 몰아낸 것은 현실이었고, 현지 개발 역시 현실이었다. 전후 소련이 만주의 산업을 싹쓸이한 사실은 일본이 그곳에 실제로 건설의 흔적을 남겼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대만은 더욱 명확하다. 지금도 많은 대만인이 “일본은 식민지 시절 정말로 대만을 잘 만들고 싶어 했다”고 말한다.
이 기억들은 지역의 역사 서사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그것은 옛날의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며, 때로는 수치로, 때로는 자긍심으로 언급되지만 늘 이렇게 상기시킨다. 일본은 한때 백인 식민지 질서를 깨뜨린 선봉이었으며, “우리는 백인보다 열등하지 않다”고 증명했던 존재였다.
2. 중국이라는 배신자의 정체
동남아·동북아와 달리 중국은 이 기억과 대면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대동아공영”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판아시아주의의 핵심 명제, 곧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아시아”에 있다.
이 명제를 인정하는 순간 중국은 자신의 역할과 마주해야 한다. 중국은 판아시아 투쟁의 기여자가 아니라 파괴자였고, 황인의 평등 투쟁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배신자였다.
손문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들인 시점부터, 황푸군관학교가 소련 모델을 들여온 시점부터 중국 현대국가의 유전자는 소련이 설계한 정보공작이었다.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은 황인의 자율적 해방 산물이 아니라, 종속 관계를 가리는 배신자의 담론이다. 황인을 배신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용된 가면이었다.
이 배신은 건국과 함께 끝나지 않았다. 일본이 패한 뒤 판아시아주의의 깃발은 갑자기 추락했다. 아시아가 진정 새로운 주체를 찾았다면, “아시아인의 아시아”를 황인 스스로 계속 밀어붙여야 했다. 그러나 “중국”은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소련이라는 백인이 만든 첩보기구였기 때문이다.
전후 중국은 소련의 지시와 자체 권력욕을 따라 계속해서 공산주의를 동남아에 수출했다. 인도네시아, 말라야, 베트남의 혁명과 내전은 본질적으로 소련과 중국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폭력실험이었다. 중국은 자금과 무기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화교 사회를 통해 정보망을 구축하며 현지 정권 전복을 시도했다.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은 바로 그런 침투가 촉발한 폭발적 반작용이었다.
판아시아주의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순간, 중국의 정당성이 배신자의 정당성임을 인정하게 된다. 중국의 배신은 단발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연속적 배신이었다.
3. 유령과 공포
이 때문에 중국인은 동남아와 동북아가 일본을 향해 보이는 애매한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는 순간, 곧 자신의 존재가 정당하다는 주장 자체를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당성은 겉보기에는 “반제국주의” 서사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것은 최근 수십 년간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판아시아주의는 유령 같은 거울이 되어, 백인에 맞서기를 진짜로 두려워하지 않았던 존재가 중국이 아니라 중국이 비난하는 “침략자 일본”이었음을 드러낸다.
이리하여 판아시아주의는 유령이 된다. 그것은 아시아 각국의 역사 기억을 배회하면서도 중국의 서사에서는 완전히 봉쇄된다. 그 유령을 한 번 불러내면 “중국”이 곧 “황인을 배신한 자”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물 수 없는 상처이며, 한 번 찢어지면 영원히 피를 흘리게 된다.
결말: 소멸의 속삭임
판아시아주의는 죽지 않았다. 그것은 유령처럼 아시아의 역사 기억과 진짜 감정 속에 잠복하며, “아시아에는 다른 길이 있었다”고 계속 속삭인다. 이 사실과 마주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중국이다. 중국이라는 존재 자체가 판아시아의 지난 실패이자 황인의 지난 실패를 뜻하기 때문이다.
유령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허구라서가 아니라, 아시아인의 귀에 끊임없이 속삭이며 배신자에게 감춰진 진실이 떠나지 않았음을,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올 것임을 똑바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배신자의 이름은 숨을 곳을 잃게 된다.
유령은 과거의 잔영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다. 그것은 아시아에서 억눌린 기억마다 소멸의 속삭임을 내보내며, 다시 호출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