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asia.ai · 범아시아주의의 미완의 땅

We Will be Back —— 범아시아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

대중화의 동남아 신기루: 뒤틀린 역사 인식

중문권의 자기 위안

아시아에서의 2차 대전 결말은 민족 해방이 아니라 질서의 단절이었다. 일본은 원래 아시아의 보루였고, 황인종이 백인 식민 신화를 처음으로 깨뜨린 힘이었다. 미국이 스스로 그 보루를 부수면서 일본이 무너졌고, 범아시아의 시도는 중단됐다. 소련은 실력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만들어 놓은 진공 상태에서 극동을 주워 갔을 뿐이다.

1949 년에 성립한 중국은 본질적으로 소련이 들여온 산물이었다. 조잡한 소련식 식민 정권으로, 아시아 최대의 대륙 국가가 스스로 서지 못하고 공산 소련이 동아시아에서 쓸 대리인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1950 년, 전체주의 축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발동자는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이었다. 스탈린은 극동에서 자신의 체제를 시험하고 싶었고, 마오쩌둥은 전쟁을 통해 공산권 내에서의 지위를 사려 했으며, 김일성은 무력으로 반도를 통일하려 했다. “중공이 스탈린에게 속았다”는 말은 사후 미화일 뿐이다. 베이징은 적극적인 발기인 가운데 하나였다.

목표는 분명했다. 한국을 제거하고, 반도를 철의 장막 속에 편입하며, 태평양의 출구를 틀어쥐는 것. 중공에게 이 전쟁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나선 첫 대규모 전쟁이었고, 걸린 것은 자기 존재였다.

미국은 제한전을 선택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선을 그었다. 한국만 지키고, 중공을 멸망시킬 생각도, 반도 전체를 해방할 생각도, 핵전쟁을 일으킬 생각도 없었다. 미국은 일부 전력만 투입했고, 전체주의 축은 총동원으로 달려들었다.

결과는 현실을 고정시켰다. 총력을 기울인 전체주의 진영은 한국을 삼키지 못했고, 제한적으로 투입된 미국은 남선을 지켜냈다. 이것은 “거의 성공”이 아니라 체제 능력의 한계였다. 공산 체제는 인구를 짜내 병력을 쌓을 수 있으나, 산업 격차도, 해공군 우위도, 후방의 간극도 넘지 못했다.

70 년이 지나 반도는 답을 내놓았다. 한국은 선진국이 되어 동아시아 근대화의 선두에 섰고, 북한은 기아와 철의 장막 아래 전형적인 전체주의 표본이 됐다. 오늘의 비교는 이미 반도를 넘어섰다. 한국의 근대화 수준은 전 영역에서 중국을 앞선다. 1 인당 소득, 산업 업그레이드, 사회 거버넌스, 생활양식 어느 것 하나 중국이 우위에 있지 않다. 만주와 동북에서 사람들은 일하고 살기 위해 한국으로 흘러 들어오고, 그것 자체가 투표다. 사람들은 발로 문명 중심을 고르고 있다.

이것이 한국전의 진짜 장기적 귀결이다. 중공이 무언가를 지켜 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갉아먹어 대륙을 장기 침체로 밀어 넣은 것이다. 반대로 한국은 제한된 지원 속에서 근대화로 나아가 동아시아의 모범이 됐다.

오늘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같은 경로를 재연하고 있다. 러시아는 제국의 관성으로 우크라이나를 삼키려 했으나, 체제의 한계가 낱낱이 드러났다. 우크라이나는 제한된 지원으로 버티고 있으며, 장차 한국처럼 폐쇄를 벗어나 현대 세계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결말은 북한처럼 역사 속 쇠락의 철막에 못 박힐지도 모른다.

한국전은 “조국 수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산 전체주의 축의 첫 전략적 패배였다. 이것이 체제의 천장을 드러냈다. 아무리 많은 인구를 희생시키고 대륙을 갈아 넣어도 결국 그 정도가 전부라는 사실. 70 년의 현실이 이미 이를 증명했다. 다음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같은 답을 다시 써 내려갈 차례다.